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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징자 희망씨앗기금 대표가 지난 24일 연세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세션'에서 발표하고 있다.
 양징자 희망씨앗기금 대표가 지난 24일 연세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세션'에서 발표하고 있다.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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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의 숫자는 연구자마다 2~40만을 헤아릴 정도로 편차가 크다. 당시의 유곽은 공창이므로 국가 책임이 없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공창제는 국가 권력의 책임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근대적 주체의 '자유계약' 행위라고 포장돼 있지만 내용은 모순적이고 기만적이고 가부장적이다. 반인권적이고 반여성적 제도였다."

지난 23~24일 양일간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세션' 국제학술회의에서 위안부 연구자인 박정애 박사는 이와 같이 비판했다. 이어 그는 "공창제의 틀과 인신매매 행위 안에서 위안부 제도 또한 운영됐다"면서 "일본ㆍ식민지ㆍ점령지 여성들이 체계적으로, 대규모로 동원됐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근대 들어 확립된 공창제도(Licensed-Prostitution System)를 식민지와 점령지 각 곳에 이식했다. 국가가 공인하고 관리한 공창제하에서 매춘은 국가의 직접 수익 산업이 된다. 여성들은 정부에 등록을 하고 폐업을 허가받았기 때문에 국가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 한국의 헌책방에서 발굴된 뒤 지난 2013년 출판된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안병직 해제, 2013)에 따르면, 위안부 여성들은 2년 단위로 영업과 폐업을 일본군에 직접 신고해야 했는데, 이로 볼 때 여성들을 동원하고 관리한 주체는 '일본군'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또 식민지 여성들은 취업사기, 강압, 감언 등으로 끌려와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소에서 착취당한 구조였지만, '강제동원' 여부에 집착하는 것은 여성들을 피해자와 (자발적) 매춘부로 이원화시켜 조직적으로 이뤄진 일본의 국가 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와 관련해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주오대 교수는 "일본에선 포주가 폐업을 못하게 하면 경찰에 신고가 가능했지만 오라 가라, 부모 데려와라 하면서 실제론 폐업이 불가능했다. 일본 내엔 폐업 규정이라도 있었고 자유 폐업 운동도 있었지만, 조선의 공창에도 폐업 규정이 적용됐는지 현재에 와서 애매하고 대만은 더 지켜지지 않았다"며 "조선인 위안부가 폐업을 할 수 있는 자유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영업기한인 2년이 지나면 본인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폐업할지 계약을 연장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사창을 단속하고 공창에 대한 규정을 만들었다. 또 매춘 여성들을 등록ㆍ관리하고 성병검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했다. 여성들에 대한 성적 착취를 공식적으로 국가 지배하에 둔 것이고, 이런 배경의 연장선에서 전쟁 시기의 위안소 운영도 이해할 수 있다.

일본군은 위안소를 직접 운영하기도 하고, 민간 업자에게 위탁하기도 했다. 이들 업자들이 조선인 모집인을 각지로 보내 "딸에게 송금을 받을 수 있다" "낮에 일하고 밤엔 공부할 수 있다" 등 거짓 감언으로 가난한 부모들을 속여 딸들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야시 히로후미 간토가쿠인대 교수는 위안부 동원에 대해 "1차적으론 군의 책임, 나아가 내무성, 외무성, 현, 최종적으로 국가의 책임"이라며 "전후에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피해자라는 의식만 있고 가해자라는 인식이 없었다. 현재까지도 그런 경향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무거운 책임을 결코 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학회에선 일제강점기 당시 위안소 제도하 여성들의 가혹한 상황,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막아온 동아시아 냉전구조, 일본의 공창제와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연관성,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법적 쟁점, 생존자들의 투쟁과 연대 활동의 역사적 의미 등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이틀에 걸쳐 다뤘다.

위안부 운동의 주요 상징인 '소녀상'은 그간 '순결' 이데올로기의 재현이라는 비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한국 젊은이들이 소녀상에 공감하는 이유는 소녀라는 개념이 여성혐오, 차별, 성폭력과 연결되면서 동질감을 통해 피해자성이 확장되기 때문"이라며 "남성들도 가해자성을 인지하는 과정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배제당한 사회적 약자들이 조우하고 말하는 장이 됐고 타자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숨겨진 경험을 만나고 서로 힘을 얻는 장이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양징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는 "생존자들이 투쟁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곁에서 보면서 본인도 바뀌는 소중한 경험을 한다. 그렇게 역사의 증인이 된다"면서 할머니들과 수십 년간 함께한 자신의 경험을 풀어놨다.

이어 "일본에서는 최근 강제로 포르노 영화를 찍은 피해자나 성 착취 피해자가 스스로 피해를 말하기 시작했다"며 "이들이 할머니들을 만나 활동가로 변하고 있다. 운동이 쌓아올린 의미를 일본 정부가 왜곡하고 있다. 젊은이들을 만나 하나하나 전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9일 '희망 씨앗 기금'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민간에서 발족했다. 시민들이 기금을 모아 일본 젊은이들을 한국으로 보내 한국의 또래들과 어울리게 하자는 취지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인도 잘 모르기에 서로 어울리며 토론하고 공감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선 한국인들이 반일감정으로 일본을 공격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이슈화한다는 오해가 퍼져 있다고 한다.            

세미나에서는 현재 유네스코가 심사 중인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건과 관련해 "일본이 매해 내던 분담금을 안 내고 버티고 있다"는 진술이 나왔다. 한국을 포함해 9개국 15개 단체가 연합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 국제연대위원회'를 창립해 기록물 등재 신청의 주체가 됐다. 일본이 발행한 공문서는 물론, 대만인 피해자의 귀국 도항증명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해 승소한 중국인 피해자의 구술 증언 자료, 한국의 헌책방에서 발굴돼 주목받은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등 총 2744건이 현재 심사 중이다.

하야시 교수는 "동아시아 냉전구조는 여전히 존재하고 더 굳건해졌다"며 "일본은 전쟁 당시 상태로 회귀 중이다. 동아시아에서 민주화가 진전되는지 의문이 든다. 여러 나라 중 일본이 제일 심각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태그:#위안부, #생존자, #위안소, #공창제, #요시미요시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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