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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가정폭력을 신고하기 위해서 지정된 약국에 '마스크 19'라는 암호를 말하면 된다.
 프랑스에서는 가정폭력을 신고하기 위해서 지정된 약국에 "마스크 19"라는 암호를 말하면 된다.
ⓒ CNN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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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 선포됨에 따라 세계 각국은 저마다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가정폭력이 급증할 수 있음을 염려하거나 실제 급증하고 있음을 보고하며, 이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는 등 코로나19로 인한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는 이동제한령이 내린 이후 전국적으로 가정폭력이 32% 증가했고, 영국과 북아일랜드는 20% 증가했으며, 미국에서도 뉴욕 나소 카운티의 경우 10% 증가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가해자와 함께 있는 상황에서 상담과 신고에 제한이 있을 것을 고려하여 약국에서 암호를 통해 신고할 수 있도록 하거나, 방송을 통해 가정폭력 상담 번호를 안내하는 등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국가가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신고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가정폭력 신고가 1월 20일부터 4월 1일까지 작년 동기간 대비 4.9%가 오히려 줄어든 것(경찰청 자료)으로 보고되었고, 코로나19 상황에서의 가정폭력에 관한 별도의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정말 한국에서는 가정폭력이 줄어든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같은 수치 비교로 한국의 가정폭력 발생이 다른 국가와 다르게 줄어들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국가별로 이동제한령의 수준에 따라 가족 구성원이 함께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다를 수 있으며, 가정폭력을 신고하지 않는 다양한 '사정'들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여성의전화의 2~3월 총 상담 건수는 작년 동기간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 다양한 여성폭력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여성의전화 상담에서 가정폭력 상담이 차지하는 비율은 1월 26%에서 2~3월 40%대로 크게 늘어났다.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2019년 전국가정폭력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배우자 폭력 피해 경험자 중 85.7%는 피해 당시나 그 이후 경찰, 여성 긴급전화1366, 가정폭력상담소 등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 신고율은 2.3%에 불과하다. 따라서 경찰 신고율만으로 가정폭력의 증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는 국가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가정폭력이 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가정폭력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왜 국가별로 다르게 나타나는가, 왜 다른 해결책을 보이는가이다.

가정폭력은 제대로 처리되고 있는가?
 
2018년 10월 29일, 한국여성의전화 등 총690개 단체가  주최한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규탄 기자회견'
 2018년 10월 29일, 한국여성의전화 등 총690개 단체가 주최한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규탄 기자회견"
ⓒ 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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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하면 "가정폭력"은 가정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이다. 전술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은 정서적 폭력, 성적 폭력, 신체적 폭력, 경제적 폭력 순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정서적 폭력의 발생 비율은 신체적 폭력에 비해 4배 정도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국의 사법체계 내에서 정서적 폭력은 '폭력'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경찰 신고를 해도 현장에서 눈에 보이는 신체적 폭력이 없는 한 가해자 퇴거 등 응급조치 및 긴급임시조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편, 가정폭력의 상당수가 신고하더라도 입건조차 되지 않거나, 입건되더라도 대부분 불처분되거나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되어 가해자에 대한 '상담' 등의 명령이 떨어질 뿐이다. 

이는 정서적 학대를 처벌하는 영국, 체포우선주의제도 도입으로 가정폭력현장에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미국과 대조적이다. 프랑스 정부 또한, 3일에 1명씩 발생하는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의 심각성을 느끼고 지난해 약 4665억 원의 예산을 투여하여 가정폭력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발표하고, 형법과 관계 법령에 '심리적 학대' 개념을 명시해 처벌 근거를 명확히 하기로 한 바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매년 약 2일에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하고 있다는 보고(2019년 분노의 게이지 -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한국여성의전화 2020)에도 제대로 된 국가 통계조차 마련하고 있지 않으며, 예산도 프랑스의 7% 수준에 불과하다. 

신고해도 소용없는데, 집 밖으로도 나가지 말라?

국가가 가정폭력 가해자를 적극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처벌하지 않는 한국의 현실에서 집을 떠나는 것 외에 피해자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과 같이 전 세계적으로 이동제한정책을 펼치는 팬데믹 상황에서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피해자의 결정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4월 6일, 여성가족부는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연장에 따라 별도 통보 시까지 가정폭력상담소를 휴관하고 피해자 지원을 전화, 온라인, 문자 등 비대면으로 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는 2월 28일에 내린 첫 번째 휴관 권고에 이어 세 차례 연장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예상할 수 있는 피해자 지원의 사각지대 발생에 대한 대책은 안내되지 않았다.

건강한 사회는 문제가 있을 때 문제가 드러나는 사회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경찰 신고율이 오히려 낮게 나타나는 등 가정폭력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있음을 주목하자. 가정폭력은 은폐되기 쉬운 범죄이다.

가정폭력 범죄가 코로나19 상황으로 더욱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사회적 메시지가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하다. 코로나19 상황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국가는 가정폭력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입니다.
*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 가정폭력 등 여성폭력 상담 02-2263-6464~5(평일 오전10시-오후5시, 점심시간 오후1시-2시)
* 한국여성의전화 및 전국지부 상담 안내 : hotline.or.kr/support_info


태그:#가정폭력,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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