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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회원에세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여성들Ⅰ] 변하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
 [릴레이 회원에세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여성들Ⅰ] 변하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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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질병이 결국 이런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이럴 줄은 몰랐을 것이다. 누구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감기와 유사하다는 질병이 결국 이런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1월에 코로나19라는 병명을 처음 들었을 때 지나간 사스나 신종플루처럼, 언젠간 약이 나오겠지. 마스크? 그렇게 꼭 써야하는건가..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도저히 코가 떨어질 것 같아 안되겠다 싶을 때나 잠깐 쓰는 거 그거... 안경에 김서리지 숨막히지, 안돼 안돼. 속으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속 편한 소린데, 그때는 딱 그 정도의 생각이었다.

 
세상 무너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 슬슬 내 통장도 무너져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2월이 되고, 세상 무너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 슬슬 내 통장도 무너져가고 있었다. 방문학습지 교사를 하고 있는 나는, 수업을 2~3주 미루겠다는 어머니들의 연락에 마냥 마음 편히 "당연하죠 어머니~" 할 수 없었다.

"어지간하면 선생님이 보충으로 나중에 수업하고, 이월은 안돼. 알았지??"

지점장의 목소리로 카톡, 문자, 정기 교육, 몇 번에 걸쳐 같은 내용이 들린다. 2년 넘게 일하며 이제껏 수업료를 다음달로 이월시키는 일은 지점장과의 장시간 상담 끝에만 가능한, 아주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다. 고객이 내는 교육비는 교사 연차에 따라 정해진 수수료율로 교사와 회사가 나눠 갖는 탓이었다.

기본급이 없으니 다음달로 이월되는 교육비란 결국 내 월급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가 된다. 가져가는 돈이 적어지니 안된다고 버티던 회사도, 시간이 지나 코로나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니 결국은 고객이 원하는 만큼 교육비를 이월해 주기로 방침을 바꿨다.

구멍 난 시간표를 들고 카페와 길거리를 전전하게 되었다

그렇게 2월이 지나가고, 3월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2월은 수업 쉬고 3월에 시작할게요~ 하던 고객들은 3월이 되어도, 4월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회사는 어떻게든 고객을 붙잡기 위해 이미 낸 다음달 분의 교육비를 원하는 만큼 이월 해 줄 테니, 제발 그만두지만 말라는 식이었다.

결국 선생님들은 수업 받지도 않는 아이를 위해 쉬고 있는 아이의 수업시간을 비워두고(나중에 그 아이 수업 재개할 때 클레임 걸릴까봐), 하루에 한 두 집 밖에 방문하지 않는 스케쥴 속에 30분 수업 후 1시간~2시간 공백, 또 30분~1시간 수업 후 1시간 공백. 이런 식의 구멍 난 시간표를 들고 카페와 길거리를 전전하게 되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봄꽃이 야속했다.

급여 명세서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3월 급여 명세서는 평소 받던 급여보다 53만원 가량이 줄어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올라와 월세 내며 1인가구로 생활하던 선생님의 경우는 월세를 못 낼 지경이라 일을 그만두실 생각을 하고 계셨고, 아이가 수술 예정이던 선생님은 100만원 급여 차감으로 아이 수술을 미룬다 하셨다.

어째서 변하지 않는 것은 꼭 여성의 몫이 될까

인터넷에는 결국 급여가 0원이 된 자영업자(학원 등), 특수고용직, 위촉계약직 노동자들의 기사가 심심찮게 보였다. 감사하게도 수업을 재개해 주시는 집들도 방문해보니 사정이 나아 보이진 않았다.

재택근무로 삼시 세끼 아이와 남편, 시댁식구 밥 해 먹이느라 흙빛이 된 회원 어머니들의 얼굴... 자가격리 하며 전세계적으로 늘어난 가정폭력.. 코로나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최근 질병관리본부의 브리핑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자의든 타의든 매일같이 변하는 수많은 것들 중 어째서 변하지 않는 것은 꼭 여성의 몫이 될까.

언젠가는 진짜 변화가 느껴지는 날로 바뀌었으면

그래도 코로나19가 보여준 세상의 뒤틀린 부분들을 자꾸 이야기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변하기 시작한다는 증거겠지.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거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쓴다.

'그래 뭐... 가는 집마다 손 씻고 마스크하고 수업하느라 올 겨울 감기는 안 걸렸네. 수업하며 소변참고 길에서 화장실 찾아 뛰어다니며 소변 마려워 동동거릴 일 없잖아. 그거 두 가지는 좋네. 변화는 느리게 찾아온다고 했지? 기왕이면 나와 다른 사람들 나가 떨어지기 전에 찾아와줬으면 싶네~.'

오늘도 혼자서 실컷 말하고 대답하고 길을 나선다. 이렇게 매일 똑같이 되 뇌이는 날이 언젠가는 진짜 변화가 느껴지는 날로 바뀌었으면.

[글/카레(민우회원)]
 

태그:#페미니즘, #코로나19,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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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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