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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일상적인, 치명적인 채용성차별'은 동아제약 채용성차별 사건을 계기로 채용성차별을 다양한 각도에서 짚어본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기획한 본 시리즈 기사는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에서 활동하는 서울여성노동자회,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전국여성노동조합과 함께 했다.[편집자말]
3·8 세계 여성의 날이 있는 3월이면 해마다 접하는 뉴스가 있다. GDP(국내총생산)로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한국 여성 고용률과 성별임금격차 면에서는 후진국 수준이라는 것이다.  올해도 한국의 30~40대 여성 고용률이 OECD 37개국 중 31위로 하위권에 속했고, 성별임금격차는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과거에 비해 여성들이 일터에 많이 진출했지만, 노동시장에서 기회와 결과의 평등은 큰 진전이 없다. 노동시장과 기업 조직에서 여성의 양적 비중과 역할이 증가했지만 노동시장의 진입, 경력 형성, 승진과 보상에서 남성과 여성은 공정한 기회와 처우를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

'이상적 노동자'로서 인간은 존재하나
 
지난 2018년 4월 KEB 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의 채용 점수 조작 및 성비 내정으로 여성지원자를 탈락시키는 금융권 채용 성차별이 드러났다. 이에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에서는 채용성차별을 시행한 기업에 항의를 담은 기자회견을 조직해 진행하였다.
 지난 2018년 4월 KEB 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의 채용 점수 조작 및 성비 내정으로 여성지원자를 탈락시키는 금융권 채용 성차별이 드러났다. 이에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에서는 채용성차별을 시행한 기업에 항의를 담은 기자회견을 조직해 진행하였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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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고용평등법은 명시적인 채용상 성차별을 규제하고 있다. 일정 규모가 있는 기업이 공식적인 채용 절차를 진행할 때 '남성 우대', '용모 단정'이라는 구인 광고를 보기는 이제 쉽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아르바이트나 계약직 등 비공식적 채용이 진행되는 영역에서는 법 위반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과거에 두드러졌던 성별분리 채용 모집과 같은 낡은 방식의 성차별이 사라지면서 채용 상 성차별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 더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수면 위로 드러난 일련의 성차별 채용 비리 사건은 채용 성차별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한금융, KB국민은행 등 채용 점수 조작 사건은 채용성차별이 만연해있다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2018년 7월 국회에서 열린 금융권 성차별 채용 비리를 통해 본 남녀고용차별 개선과제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이 소개됐다. 이들은 "신입 행원 가운데 여자가 너무 많으면 곤란해 남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올려준 것으로 조작이 아니라 조정이다", "출산과 육아휴직 등 여성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전체 인력운용 차원에서 채용 비율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은행에서 여직원 텔러 뽑을 때 남자 안 뽑는 건 성차별 아니냐"라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노골적인 점수 조작이 아니더라도 면접 과정에서 여성 지원자는 말로만 듣던 차별의 벽을 경험하게 된다. 모성보호 제도가 강화되면서 채용상 성차별의 주된 요소로 등장한 것은 여성에게 전가된 가족 돌봄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성차별을 뿌리 뽑기 위해 2018년부터 온라인 익명신고센터를 운영한 이후 2018년 9월~12월까지 100건이 넘는 성차별 사례들이 접수됐다. 익명신고 센터에 접수된 차별의 유형에는 결혼과 출산을 이유로 여성 채용을 기피한 사례가 많았고 면접에 응시한 여성 지원자에게 '결혼과 임신 계획'을 묻는 사례가 여전히 많다.

고용주들은 일 잘할 수 있는 사람, 조직에 맞는 사람을 뽑기 위해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얻고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이런 고용주들의 행동은 '통계적 차별' 이론은 이렇게 설명한다. 고용주는 실제로 직무를 수행하기 이전까지는 지원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지원자의 실제 능력을 대신할 수 있는 선험적 지식이나 정보로 그 지원자의 생산성을 예측할 수밖에 없다.

지원자가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알기란 불가능하므로 고용주는 학력, 지역, 성이나 인종과 같이 생산성이나 이직성향과 일정한 상관관계를 갖는 집단의 특성을 이용해 지원자 개인의 성과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고용주가 '평균적으로' 여성 지원자의 생산성이 낮고 아이를 낳으면 육아휴직을 쓰거나 그만둘 것이라고 믿으면, 그 여성 지원자가 아무리 평균적인 남성보다 우수해도 채용에서 불이익을 겪게 된다.

노동시장에서 성평등은 오랫동안 남성 노동자를 표준, 이상적 규범으로 삼아왔다. 언제라도 회사의 부름이 있으면 일하러 달려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고 매여 있는 노동자, 자녀나 부모를 돌볼 책임을 방기하고 하루 8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있는 노동자를 '이상적 노동자(ideal worker)'로 보고 있다. 이 이상적 노동자상에 견주면 임신, 출산해야 하는 생물학적 조건에 처하여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필요로 하는 여성은 기업이 원하는 노동자상에서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맞벌이 가구가 점차 보편적인 가족 형태가 되면서 '이상적 노동자' 기준에 부합할 수 있는 남성이나 여성 노동자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가정은 뒷전이고 조직에 헌신할 준비가 된 '평균'적인 남성상은 과거만큼 공고한가.

채용성차별이 여성 생애주기에 미치는 영향
 
2020년 10월,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에서 주최한 <채용성차별 해소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 - 왜 성별은 스펙이 될까?>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채용성차별이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새로운 통계 방법을 통해 차별의 기준을 제시, 법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고민까지 담아내었다.
 2020년 10월,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에서 주최한 <채용성차별 해소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 - 왜 성별은 스펙이 될까?>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채용성차별이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새로운 통계 방법을 통해 차별의 기준을 제시, 법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고민까지 담아내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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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성차별은 여성의 경제적 지위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동 생애를 거쳐 축적하게 되는 인적 자본의 차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남녀의 경제적 지위와 성과의 격차를 야기시킨다. 차별이 없었다면 똑같이 생산적인 노동자가 되었을 것이고 똑같은 직종이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남성과 여성의 임금과 평생 소득은 달라진다.

채용 성차별은 여성의 임금과 평생 소득을 낮출 뿐만 아니라 생산성조차도 '직접적으로' 낮추는 역할을 한다. 초기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회사에 상용직으로 들어가지 못한 여성은 쌓인 경력을 바탕으로 몸값을 올리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거나 스카우트 당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일·생활 균형이 가능하도록 정시퇴근과 휴가 사용이 자유로운 공기업과 은행 신입사원 공채에 탈락한 청년은 자기 계발 프로그램이나 훈련에 참여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킬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채용성차별은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소위 간접적인 '피드백' 효과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염두에 두고 있는 분야에서의 채용상 성차별을 직·간접적으로 듣거나 경험한 여성은 자신이 내린 투자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주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되고, 진입이 어렵지만 직업적 지위와 보상 수준은 높을 수 있는 도전과 선택을 회피할 것이다. 대신 여성이 취직하기 쉬운, 여성이 몰리던 직종의 여성 집중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채용성차별 결과 발생하는 성별 직종 분리와 나쁜 일자리 집중 현상은 여성에게 평생에 걸쳐 소득, 승진, 연금 차원에서 불이익을 경험하게 만든다. 여성이 피드백 효과 때문에 최선의 인적 자본 투자를 안 하는 것은 결국 여성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원 배분의 왜곡이나 소중한 자원 상실을 의미한다. 채용 성차별 해소는 형평성과 효율성 모두를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채용 성차별의 증거가 없다고 믿는다면 정부의 개입과 이에 순응해야 하는 기업의 노력은 비용으로 치부되겠지만, 채용 성차별은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다만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내기 위해 입증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태그:#채용성차별, #직장내 성차별, #여성노동자, #성평등노동,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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